제법 쌀쌀한 아침 기온에 마음이 심란하다. 오늘은 우리 식구가 이사 하는 날이다. 콜로라도의 남쪽지역이 이리 춥다면 길목의 mountain pass 지역은 무척 춥고 길이 빙판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센트럴 캘리포니아에 가기 위해 덴버로 올라가 로키산맥을 거쳐 유타주, 애리조나, 네바다를 지나 캘리포니아에 가는 길이 자그마치 1,330 마일즈(2140 km)나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집에 와 있던 아들이 앞서 리드를 하겠다고 한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가야 하는 마음은 뭐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그저 '엄마의 심정'이라고 해두자. 아무쪼록 이틀 반 정도 되는 장거리 운전의 무사를 기도한다.
괜히 Rocky 산맥이겠나. 돌이 언제고 굴러떨어질 것 같은 길을 계속 달린다. 그래도 아직은 길이 드라이해서 설마 영하로 뚝 떨어지는 기온과 빙판길, 그리고 날리는 눈이 상상이 안 된다. 그것도 5월인데 말이다.
읍스...점점 눈이 드문드문 쌓인 산의 모습이 드러나고 수은계가 급격히 떨어지고 바깥 온도의 차이가 느껴진다. 어느새 풍경은 하얗게 변했다. 설마했지만, 분명히 딴 세상은 존재했다.
눈마저 날린다. "아들아 조심!" 뭐 하나마나 한 말이다. 기도나 하는 수밖에.
꼬불탕한 길에 급경사에...., 콜로라도의 유명한 스키장은 다 모여 있다. 자고로 5월은 그저 달력에 불과한 무의미한 숫자일 뿐이다. 여기서는. 봄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 정도 이런 길을 지나야 했다. 아들은 엄청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녀석 말에 의하면 '2 hours of hellish drive' 였단다. 험하게 운전하는 다른 차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반면에 남편은 느긋하고 여유만만이다. 몇십 년의 운전 경력자와 아직 초보 운전자의 차이일 것이다.
또래 청소년과는 달리 16살에 운전 못 해 안달하지도 않았고 차를 사달라고 보챈 적이 없던 아이. 운전면허도 18살에 땄다. 대학 3년 동안 차 없이 생활했다. 식구가 같이 움직일 때면 으레 엄마나 아빠가 운전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급함이 없는 아이다. 아주 가끔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우리 역시 다그치고 억지로 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부모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달라도 무심히 지나갔다.
우리가 더는 학교에 데리러 가고 데려올 수 없는 거리로 이사하면서 자연히 차 한 대를 주었을 때는 이미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때다. 집이 다니던 학교에서 너무 멀어진 탓에 아이는 많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다. 못 미더운 나는 아이가 장거리 운전을 할 때마다 기도부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아이가 엄마나 아빠의 운전실력이 되레 못 미더운가 보다. 언제부턴가는 으레 자기가 운전을 한다. 눈이 조금만 와도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눈길 운전도 가르쳐 주겠단다.
스트래스 잔뜩 받은 아들아이가 유타주의 한 rest stop으로 빠진다. 좀 쉬어가자고 한다. 인제야 스트래스가 풀렸단다. 웃는 낯에 여유로움이 보인다. 그러더니 아빠와 단숨에 산등성이를 오른다.
다음 날도 아이가 앞장을 섰다. 덕분에 나는 남편과 함께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갈 수 있었다. 네바다로 가기 위해 애리조나주에 들어서니 계곡이 장관이다.
나도 어제보다는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더는 빙판도 없을 것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라스베가스를 지나면서 남편이 뭐라도 먹고 인포에이션도 받으려고 빠지자고 했다. 그런데 열심히 인포 화살표를 따라가던 아이가 갑자기 왼쪽 차선에 선다. 이건 또 무엇인고? 하는 사이에 차들은 움직이고 아이는 다시 프리웨이에 진입한다. 그것도 가야 하는 반대 방향으로. 싸인을 착각한 것이다. 다음 exit까지는 자그마치 11마일이다.
남편은 이제부터 자기가 리드를 해야겠단다. 아들은 되려 자기가 혼자 다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데, 왜 자기를 따라오느냐고 한다. 마치 우리가 자기한테서 못 떨어져 나가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법.
목적지보다 더 운전 하기로 하면서 남편이 자연히 선두에 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의 차가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뒤처진다 싶으면,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다고 아들은 연방 전화를 해준다. 처음엔 뒤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놀랐지만, 그 후로는 아이고 웬 자상? 그냥 따라오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진입해서는 말로만 듣던 In and Out Burger를 먹어야 한다는 아들아이를 위해 물어물어 찾아가 In and Out Burger로 이날 하루의 피곤과 스트래스를 다 날렸다.
(새로 이사 온 집 마당에 자주 나타나는 사슴가족이다.)
우리 아이도 얘들처럼 이렇게 엄마를 졸졸 따라다닐 때가 있었던가? 엄마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적이 분명히 있었는데, 어느새 자기 성장시간표에 따라 성장해서 부모를 염려한다.
잔뜩 흐리고 비가 날리는 날씨지만 엄마 seal이 새끼를 예뻐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이의 모습. 엄마와 새끼들의 모습.
언제봐도 가슴이 따뜻하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까?
엄마의 시간표가 아닌 아이의 시간표를 존중하는 것은 엄마의 성숙을 요구한다.
아이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조급함 대신 여유와 긍정을, 불안 대신 평안을, 실망 대신 희망과 소망을, 그리고 신뢰를 주려면, 좌절 대신 투지와 끈기의 중요성을, 포기 대신 강인함을 심어주려면 엄마는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까지 무사히만 간다면 나는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던 '엄마의 심정'이 지금은 감사와 평안함으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남편과 단 둘이서의 여정이었다면 전혀 겪지 않았을 이 '엄마의 심정' 때문에 나 자신과 투쟁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마음의 키가 한 자 자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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