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도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이제서야 완연하다. 활짝 펴서 황홀하게 휘날리는 벚꽃이 온 동네를 삼킨다.봄이야 항상 이맘때 왔겠지만, 겨울이 길어지고 마음을 설레게 하던 눈도 싫증이 날 무렵 유난히 봄이 기다려진다. 그런데 무엇이든 기다리면 기다릴 수록 더디고 천천히 오는 법. 마음은 늘 이런 트릭을 부린다.
오늘 같이 환하고 따스한 햇볕이 가득한 날은 봄이 좀 더 머물렀으면 하는데 어째 잽싸게 가버릴 듯 해 오히려 조바심이 든다. 하긴 늘 그랬다. 그리 길지 않은 봄. 잠깐 머무르고 후다닥 가버리는 계절이 봄이다.
지난 해 봄에는 이곳에 살지 않은 나는 겨울내 축 늘어진 빈 가지들을 보며 그랬다. 하늘이 잘 보이고 햇살도 잘 받게 좀 잘라 버리지. 늘 길을 그늘 지게 하는 나무가 쓸데 없이 여겨졌다. 이 동네는 왜 나무가 이리 많지. 쪽 바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소나무같이 늘 푸른 사철나무가 좋지. 제멋대로 뻗치고 길가로 너무 낮게 늘어진 나무. 제대로 통제가 안 되어 보이는 이 나무들을 보며 나는 비웃었다.
하지만 이 나무의 정체를 나만 모른 거다. 내가 봄이 더디 온다고 투덜거릴 때,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고, 겨울 내내 추위와 눈으로 적막해진 가슴을 이렇게 봄향기로 체워줄 벚꽃나무인 줄 몰랐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쁘다는 길로 매번 지나 다녀도 왜 그런지를 몰랐다. 벚꽃이 만개하기 전까지는. 아, 이 무심함과 무지함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꽃과 나무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내가 기다리는 봄이 더디게 오는 모습을 보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알듯하다 가도 모르겠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 아주 비슷하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부모의 그 어떤 통찰력이나 육아 기술보다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단순한 지혜가 아이를 알아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엄마의 마음과 자세에서 풍기는 여유와 느긋함, 믿어주고 응원하는 그 눈빛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자양분이기도 하다. 때가 되면 봄이 오듯, 아이도 피는 시절이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아직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자라는 동안 우리는 더디고 느린 뒤처지는 아이만 보는 건 아닌지.
요즘처럼 빠른 것을 선호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아이를 재촉한다. 실수. 모험. 도전. 잠시 멈춤. 제자리걸음. 이 모두 용납도 허용도 안 된다. 빨리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 강박감에 아이를 재촉한다. James and the Giant Peach, Charlie the Chocolate Factory로 등으로 유명한 작가인 Roald Dalhl은 아이에게 더 많은 모험을 허락하면 할수록 아이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더 잘 배운다고 했다.
탐험하고 도전하는 아이는 넘어지기도 자빠지기도 한다. 또는 부수고 깨고 쏟고 흘린다. 이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다가 홀연히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유아기를 보내고 학교에 다닌다. 글씨는 삐뚤빼뚤. 들쑥날쑥. 뭐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보여도, 더디 배우는 것 같에도 또한 이 시기도 물 흘러가듯 지나가 세련된 글씨체를 자랑하고 아는 것도 많다.
실은 아이가 자라나는 하루하루가 모두 특별하고 귀한 날이다, 이날이 모여 한 인격이, 능력이, 자신감이 형성된다. 엄마는 이 긴 세월 동안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재촉하면, 빠른 것을 기대하면 할수록 아이의 성장이 더 더디게 느껴진다.
아이는 크면서 수도 없이 우유를 쏟는다. 근데 아이가 쏟은 우유 때문에 우는 건 아이가 아니라, 늘 엄마다. 이미 쏟아진 우유 때문에 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안다. 오늘 우리 아이가 쏟는 우유가 무엇이든 이것만 기억한다면 육아가 훨씬 즐거울 수 있다.
잠시 쉬어 가고 싶게 하는 꽃 나무 아래 두 의자.
꽃이 피지 않은 나무 가지만 있을 땐 잘라주고 싶더니 꽃이 피니 참 멋지다.
너무 예쁜 길.
마당에 벚꽃 나무가 있는 집이 부럽다. 이 집 뒤로 있는 우리 집은 벚꽃나무는 커녕 꽃나무 하나 없다. 그저 메이플 나무가 텃세를 부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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