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크리스마스 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타뜻한 차를 연거푸 마시며 교회의 할머님들이 손수 만들어 주신 쿠키와 토피 그리고 케익과 쵸코릿를 바라보며 행복해 한다. 흉내조차도 언감생심인 수 십 년간의 솜씨가 만들어 내는 환상의 맛.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들의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너무나도 귀한 선물. 이곳에서 2년 임기 동안 우리 가족에게 베푸는 사랑이 내게는 귀한 추억이 되어 차곡차곡 쌓인다.
아들아이가 10살 되던 해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독일에서 지냈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이와 나를 뒤로하고 가버린 남편. 하필 남편이 파병되는 날이다. 나는 그제야 아이를 데리고 지금까지 안중에도 없던 크리스마스 츄리를 사러 간다. 스토어에 딱 하나 남은 크리스마스 츄리, 내가 원하던 것보다 좀 더 큰 츄리를 사왔다. 둘이서 삼 층으로 끌고 올라가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아이가 기억한다.
급조된 츄리다 보니 오너먼트도 없다. 오래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둘이서 부지런히 오려 리본을 달아 트리를 장식했다. 나는 이렇게 방금 떠난 아빠를 잊게 하려고 아이를 바쁘게 만들었다. 어느덧 꽤 큰 나무를 우리는 카드 오너먼트로 장식을 끝냈다. 한동안 정신없이 오리고 자르고 매고 걸던 아이. 당연히 떠난 아빠는 잊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츄리가 멋있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끝낸 뿌듯함의 환호 대신 "I miss daddy."하며 울먹이는 아이 때문에 나는 당황한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쓸쓸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날 이후 14번째 맞는 크리스마스다. 어쩔 수 없이 그때 그 기억과 추억은 불씨가 되어 살아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동안 오너먼트도 많이 모여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오리지 않는다. 나는 다소 촌스러운 색과 디자인의 빈티지 오너먼트에 끌린다. 매다는 대신 나뭇가지에 클립하는 새의 멋진 자태를 제일 좋아한다. 사진 찍을 때 크리스마스 츄리가 만들어내는 황홀한 배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물론 남편에게는 매번 일러주어야 한다. 어떻게 이 츄리를 사게 됐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나는 한 말 또 하고 또 하면서 옛 추억을 들춰낸다. 그 울먹이던 열 살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는 높아 팔이 닿지 않는 추리 꼭대기에 비스듬하게 걸쳐진 츄리 탑을 바로 잡아준다.
내가 독일에 살적 얘기를 할 때마다 귀담아들으신 독일 출신 할머니의 선물. 독일제 산타. "I know you like German stuff." 음... 아마도 내 수다가 지나쳤나보다.
프레쉬 츄리를 사고 싶은 충동이 전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와 얽힌 기억과 추억으로 나는 이 츄리를 오랫 동안 곁에 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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