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ids and Photo Story

아이가 남기는 흔적

by mk in us 2013. 1. 12.





오늘 호주 시드니에서 엽서 한 장이 날라왔다. 언니 집에 현이와 놀러간 세릴님에게서 온 거다. 세상 모든 게 디지털로 돌아가는 세상이라서 인지 오랜만에 직접 쓴 엽서의 짧은 글이라도 한참을 들여다본다. 신기함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셰릴님을 만나기라도 한 듯한 반가움이 겹쳐서.


아이가 대학을 가고 나름 내가 아는 동화책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되면서 세릴님을 알게 되었다. 누가 내 블로그에 들어와 읽기나 하는지, 진정 도움이 되는지, 누군가가 공감을 하는지, 전혀 반응이 없을 때, 세릴님이 남길 댓글. 혼자 좌절하고 혼자 싫증내며, 계속 할까 말까를 오가며 헤맬 때 혜성같이 나타나 에너지와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했다. 


세릴님의 아기 현이는 한국에서 자라는 이중언어 아기다. 이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블로그를 통해  엿볼 수 있어서 그 재미가 쏠쏠하다. 나도 내아이가 어릴 때는 조바심 냈다. 내가 지금 현이를 바라보는 여유와 확신이 없었다. 내 아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혜와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시절이어서다. 잠을 안 자면 왜 안 자는지. 잘 안먹으면 왜 안 먹는지. 말이 남보다 더디면 왜 더딘지. 왜 더디 자라는지. 왜 안아주어야만 자는지. 왜 자주 아픈지. 왜 손가락을 빠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젊은 엄마는 확신이 없다. 


이렇게 엄마는 좌충우돌 하는 동안 내 아이는 누가 대신 키워주기라도 한듯, 잘 자랐다. 아쉬움도 물론 있다. 책을 좀 더 많이 읽어줄걸. 좀 더 많이 놀아줄걸. 좀 더 많이 길게 지켜볼걸. 좀 더 "괜찮아." 소리를 많이 할걸. 


10살 무렵에 잔소리하거나 야단을 치면 살짝 엄마를 째려보거나 어처구니 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버릇이 생겼다. 이 아이에게 나는 "If you roll your eyes, your eyes will stay that way."라는 거짓말로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고 했단다. 아이 말에 의하면.  자신은 엄마 말이 사실이 아닌 것도 알았단다. 그렇다. 좀 더 똑똑한 엄마였어야 했다. 이것도 좀 아쉽다. 



네 살 꼬마 현이도 아기 테를 벗고 어린 소년이 되어간다. 엄마가 쓴 엽서에 자신의 영어 이름을 쓰고 하트도 그렸다. 아이가 크면서 남기는 흔적. 저절로 미소지어 진다. 고이 고이 간직하고 싶게 한다. 언젠가는 세련되게 글을 쓰고 그럴듯한 그림도 그리게 될 현이. 그날보다 오늘이 내겐 더 소중하다. 먼 훗날 안 지켜봐도 다 잘하는 그날보다 하나씩 둘씩 새로운 것을 배우고 처음하는 지금. 고사리같은 손으로 남긴 이 흔적이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우리 아이가 현이 무렵 삐뚤빼뚤 글자 하나도 빼먹어 스펠링도 틀리게 자기 이름이라고 쓴 책과 자라면서 수없이 쓰고 그려 만들어 준 카드는 내 아이가 남긴 흔적이다. 어른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고 완벽하지도 완전하지 않지만, 실은 아이가 자라가는 과정 중 남기는 아이의 유일한 흔적이다. '이것밖에 못 한다'는 어른의 평가와 판단, 단정 대신 고이 간직할 우리 아이만의 당연한 성장 과정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 일부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아이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버리기 좋아하는 이 엄마에겐.



아이는 소근육이 발달하면서 손에 힘이 생기면 글씨는 저절로 다듬어져 간다. 색칠도 가지런히 한다. 무엇보다도 사고하는 능력이 생기고 참을 줄도 알고, 미리 생각할 줄도 안다.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져 간다.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가 거쳐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의 특권이다. 즐거움. 걱정. 흐뭇함. 불안. 염려. 안타까움. 뿌듯함. 대견한 순간. 수도 없이 많은 순간이 오가며 쌓이는 동안 엄마는 아빠는 행복을 만난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보호하고 가르치고 응원하며 같이 있어주는 동안 행복이 쌓인다. 


내가 권하는 책을 읽으며 자라는 아이. 현이가 자라는 흔적 일부가 내게 온 날, 나도 이 날 느낀 내 마음의 흔적을 남겨본다. 









'Kids and Photo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Bremen Town Musicians  (0) 2013.03.19
Mitsumasa Anno의 Wordless Book  (4) 2013.01.27
어느 크리스마스 날  (0) 2012.12.28
Thanksgiving Day 2012  (0) 2012.11.23
Thanksgiving Day와 사이드 디쉬  (0) 2012.11.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