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 위에는 키가 높은 큰 스탁 팟이 끓고 있다. 살을 발라낸 터키 뼈와 껍질, 셀러리와 당근 양파를 넣어 수프 국물을 만드는 중이다. 매년 추수감사절 날 나의 마지막 일과다.
오늘 아침은 여유롭게 파이 크러스트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그냥 편안한 하루.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나씩 여유를 부리며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작은 미니 오븐을 bake 대신 broil로 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아니 가물가물한 눈이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윗면이 홀랑 타버리고, 다른 디쉬 하나는 위는 익었는 데 밑은 물기가 그대로다. 뭐 영화 '크리스마스 스토리'의 렐프네 집에 일어난 터키 사고에 비하면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지나친 여유만만이었나 보다. 약간의 긴장은 필요했는데.
새로 시험해 본 터키는 잘 구워져 나왔다. 그래도 다음에는 번거롭긴 해도 프레쉬한 터키를 브라인 해서 만들고 싶어졌다. 맛있었다. 하지만 한 일 년은 터키 먹고 싶은 생각은 안 들지 싶다.
지난 한 해는 감사한 일이 참 많았다. 그 중 가장 감사하고 기쁘기도 한 것은 역시 아이 때문이다. 사람이 커가면서 성품이 다져지고 건전한 사고를 하는 삶에 지혜가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기쁨은 부모의 특권이다. 너무도 감사한 특권이다.
오늘도 먹고 나니 치울 게 부엌 가득하다. 우리의 수다도 못지 않게 우리 부엌을 채운다. 한때는 한 몸 전체가 불과 내 팔 안에 안길 정도의 자그마하던 아기였는 데, 이제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또 무엇을 배우게 될까?"라는 생각을 한단다. 청년은 사람을 대하고 사람들 속에서 부디 끼며 그 속에서 배운다. 언짢은 일이든, 어이없는 일이든, 부조리든, 인간의 오만이든, 크고 작은 일을 통해 사회 초년병은 생각하고 배운다. 분별을. 책임을. 우선순위를. 최선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를. 세상 사는 지혜를.
더는 안아 줄 수 없지만. 더 이상 따라 다니지 않지만. 날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지만. 육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성인으로. 사회 초년생의 좌충우돌 삶이 필요로 하는 다른 육아는 계속된다. 엄마인 이상.
어느 한 미국 아줌마는 대학생 시절, Thanksgiving Day는 집에 가고 싶은 날이었다고 한다. 엄마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집 떠나 있는 아이들에겐 엄마의 품이 그리운 날이 Thanksgiving Day이기도 하다. 엄마가 있어 감사한 날. 엄마이기에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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