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이사 온 후 첫 겨울을 났다. 내게는 무척 긴 긴 겨울이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애타게 바라면서 봄을 기다렸다. 그렇게 길기만 하던 겨울 마지막 자락에서 봄이 오는 흔적이 눈에 띄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반가웠다. 활짝 피어난 꽃들의 수려함과 그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마다의 독특한 색을 자랑하는 꽃들을 보는 즐거움은 봄과 여름이 가져다주는 큰 선물이다.
우리 집 마당과 이웃집 뜰에 제각기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있으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연상된다.
겨울 동안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생긴다. 고이고이 감싸여져 있던 꽃망울은 점점 땡 글 땡 글 해져 터지기 직전까지 간다. 한 나무에서도 꽃망울은 수시로 생기고 저마다 때가 정해져 있는지, 꽃봉오리를 여는 시기도 꽃이 피는 시기도 다 제각각이다.
마치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듯이. 조심스럽게 살며시 그리고 천천히 봉오리가 벌어지고 꽃잎이 하나씩 펼펴진다. 활짝 핀 모습도 아름답지만, 저렇게 슬며시 봉오리가 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특하기마저 하다.
추운 겨울 동안 잘 견딘 것도, 봄이라지만 서리도 우박도 오는 변덕스런 날씨를 이겨낸 것도. 그것 뿐인가? 키가 좀 큰 꽃나무는 못 배겨나는 곳이라는 곳에서 키가 작은 꽃나무라고 더 나을 것도 없을 텐데, 그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끗끗하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켜 주었다. 갑자기 계속되는 더위에도 쉬 마르지 않고 생생함을 유지한다.
어느 날 활짝 웃음을 머금은 듯 속속히 들이박힌 꽃 이파리마다 다 활짝 활짝 열리고 만발해 겨울 동안 생명이 싹트는 시기를 기다리느라 좀 지치고 삭막해진 가슴에 가슴이 다시 촉촉해지는 기쁨을 선사한다. 그 누가 알았으랴! 이렇게 겹겹이 이파리를 품고 있었는지를.
크레용으로도, 그 어느 물감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을 드러내는 이 신비함! 이 꽃들을 처음 보는 나는 더 황홀해했다. 그런데 내년이 되어도 이들의 아름다움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꽃망울만 볼 땐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마냥 궁금했다. 특히 처음 보는 꽃은 더 하다.
아기가 우는 것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신생아일 적엔 아이의 목소리도 궁금하다. 빨리 말을 했으면 싶다. 아기가 배시시 미소를 머금기만 해도 무엇인가가 통하는 것 같에 엄마 아빠의 마음은 한없이 즐겁다. 언제 첫 걸음마를 하는 지는 모든 부모들의 최대 관심거리다. 언제 우유와 이유식이 아닌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갈수록 어떤 아이로 자랄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아이일까 상상하게 된다.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지만 어떤 모습으로 이 아이는 피어날까 자못 궁금해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그렇게 궁금해 하는 사이에 아이는 어느새 말문은 터지고 기고 일어서고 걷고 뛰기 시작한다.
꽃봉오리가 열리고 감추어졌던 색과 꽃잎의 모양을 들어내고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듯이, 아이도 자기만의 색깔과 향기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기쁨이자 축복이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보며 이 꽃의 진가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 각기 피는 시기도 계절도, 모양도 색깔도 향기도 크기도 다 다르지만, 그 어느 꽃도 나름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은 꽃이 없다.
누구에게나 시기와 기회는 반드시 주어진다고 한다. 꽃망울인 아이들을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지 말자.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주자. '빨리 빨리' 하며 서두르지 말자. 꽃봉오리 벌어지듯 때가 되면 살며시,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안 보고 있을 때 슬그머니 피어나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만의 시기가 있고 독특함과 가치가 있다.
이렇게 지켜보는 순간들은 아주 빨리 추억이 되어 가버린다. 그러기에 더우기 아이들의 피어나는 몸짓과 발짓, 날개짓을 놓치지 말고 지켜보아야 한다. 바라보는 동안, 더디가는 시간이지만 아이옆에 가만히 앉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참으로 값지고 귀하다.
이렇게 지켜볼수 있었기에, 곧 머지않아 활짝 피어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더 감사하고 기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우리의 아이. 부모를 신뢰하면서 자라나는 이 아이의 가치는 그의 재능과 성취에 있지 않다. 우리의 아이로 태어난 사실만으로도 이 아이는 귀한 아이다. 모든 것을 주어도 모자란다. 아이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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