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최근에 빌려 온 픽쳐북이 10권이나 된다. 물론 리뷰하기 위해서다. 도서관이 멀지는 않지만, 간 김에 좋은 책들이 날 기다리기라도 한 듯 대출 안 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책만 보면 욕심이 생겨서, 그림에 반해서..., 등등의 이유로 싸들고 왔다.
도서관에 가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어린이 도서 섹션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한 곳에 진열된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쭈그리고 앉어서, 어부 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행여나 지나칠까 봐 한 권 한 권 더듬는다. 때론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자원봉사자들마저도 귀찮다. 내게는 도서관은 원하는 책을 찾아 후다닥 뛰쳐나오는 곳이 아니다. 책을 찾는 재미. 책에 둘러싸인 기분. 내가 원하는 책을 손수 찾아낼 때의 황홀감. 이런저런 만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곳이다.
나의 픽쳐북에 대한 기억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시절로. 알파벳도 모르던 시절 내 손에 들려진 미국 동화책의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되어 한참을 책에다 코를 박은 채 눈을 떼지 못 하던 날. 영어로 된 글을 읽고 싶다는 충동과 그 내용을 알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올랐다. 이솝 우화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그림과 전혀 읽을 수 없는 언어가 뒤섞인 페이지가 지금도 선명하다.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만 되면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과 그림이 만나는 세계가 내겐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어갔다. 나는 아주 미묘한 차이도 다르게 형용할 수 있는 한국어를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커가면서 영어와도 사랑에 빠졌다. 듣기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언어. 감정을 맘껏 표현하게 하는 언어. 짧은 단어 하나와 표현에도 많은 함축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 언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픽쳐북 사랑을 하게 된 이유가 언어와 그림이 함께 부리는 이런 요술 때문인가 보다.
평범한 어휘들이 작가의 손에 들려 아름다운 문장으로 태어난다. 한 폭의 그림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 이런 글에서는 소리도 들린다. 같은 소리가 나는 어휘의 적절한 배치와 라이밍에 귀가 간지럽다. 말이 혀끝에서 논다. 살아 있는 책들은 가슴마저도 따뜻하게 한다. 고사리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스토리에 담긴 삶의 교훈을 고스란히 배운다. 아이들의 세상이 넓어져 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꿈을 꾼다.누군가는 언젠간 런던에 가고 싶어하는 꿈을 가슴에 간작하며 자라난다. 런던이 배경인 책을 읽었기 때문에.
삽화가의 섬세한 그림은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인물이 살아 움직이고, 책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어느새 글의 배경에 빠져있다. 색연필, 크레용, 판화, 물감, 목탄 등등의 다양한 매디움 중 이 삽화가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알기 위해 유심히 들여다본다. 책을 읽어 주는 아이에게 물으면 책을 들여다 보는 아이의 눈도 아티스트의 눈으로 변한다.
픽쳐북 한 권에는 예술이 담겨 있다. 책 한 권을 펴고 앉으면 책 속에 그려진 세계로 빠져든다. 어른을 위한 복잡한 세상 이야기가 아닌 단순한 소제 속의 단순한 삶의 진리가 나를 씩 웃게 한다. 어린이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여 어른의 마음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산들바람처럼 가슴을 식히는 신선한 책 바람이 분다. 순식간에 읽어버릴 책이나 숨겨진 보물을 지나칠세라 음미한다.
작가이자 삽화가인 어떤 작가는 그림을 먼저 창작하고 여기서 스토리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삽화가가 나중에 작가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작가와 삽화가 찰떡 쿵이 되어 마치 한 사람이 쓰고 그린 것처럼 작가의 의도를 기막히게 살려내는 유명한 작가와 삽화가 콤비도 있다.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사이 아이들의 내면에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티브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배우는 학습과는 다르게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책을 통해 아이와 하는 소통은 값을 매길 수 없게 소중하다. 하지만 어른의 숨은 동기를 조심해야 한다. 아이를 드릴 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인위적인 주입은 학습효과가 없다. 간혹 영유에 다니기 때문에 발음이 완벽하다든지, 벌써 챕터 북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해리포터를 읽는다고 자랑하는 부모를 본다.
미국에 사는 아이 중 미국서 태어난 아이도 발음에 악센트가 있다. 12살 때 미국에 온 75세 독일 할머니는 마치 엊그제 미국에 온 사람같이 악센트가 아주 지독하다. 한국서 제한적인 언어의 노출, 그리고 영어가 제 2외국어인 현실에서 과연 우리 아이의 발음이 완벽할 수 있겠나. 너무 쉽게 단정하지 말자. 영어를 배워가는 여정은 실제로 험난하다.
초등학생이 해리포터를 읽는다는 자부심. 과연 진정한 독해를 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익숙해진 내용과 영화에 노출로 스토리를 좀 알다 보니 이해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사용된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 대신 대강 추측해서 내용을 이끌어 내는 건 아닌지. 진정한 독해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은 한 챕터를 읽은 후에 내용을 묻는 것이다. 아이가 읽은 것을 잘 추려서 대답할 수 있을 때 아이의 독해력을 믿을 만 하다.
물론 어른이 영어를 처음 배우는 것과 어린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른은 어느 정도의 문법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은 답안지 쓰기 위한 교육인지는 몰라도 진정한 영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중 2 후반부터 고2까지 영어 환경에서 학교에 다녔다. 이 짧은 시기에 문법적인 요소가 저절로 거의 해결이 되어버렸다. 잠시 한국에 돌아가서도 고등학교를 마치는 동안 영어 때문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한국 사람에게 아주 기본적인 문법 외에는 문법적으로 설명은 못 한다. 그냥 아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그냥 안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주고 읽으면서 또 쓰면서 저절로 해결될 많은 영어의 요소를 문법 중심으로 가르치다 보니 영어의 불규칙하고 한 단어가 다양한 의미가 있는 변덕스런 언어에 대한 감각이 서질 않는다.
가끔 영어 실력을 자부하는 어른들이 쓴 글을 보면 분명히 고급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문법적으로 맞기는 하는 데 억지로 꿰맞춘 부자연스런 글이 대부분이다. 자연스러운 영어는 평범한 대화와 정확하고 좋은 영어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이 필수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에게도 장차 아이의 언어 교육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방법이다. 하물며 제 2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어떻겠나?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미국인들마저도 틀린 문법에 익숙해진 이들의 정서를 참작할 때 좋은 책 읽어 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한국서는 어려서 영어를 잘하다가도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하곤 한다. 물론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잘 못 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영어가 자연스러운 정도의 수준이 되면 이 격차는 충분히 다 메꿔진다.
아이가 책에 대한 관심이 있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아이가 관심을 두도록 어려서부터 조금씩 책에 노출한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아이는 스스로 모른다. 부모가 읽어주어야 알게 된다.
티브이는 아이를 능동적으로 만든다. 반응할 사이 없이 초스피드로 아이를 자극하는 대신 혼동시킨다. 너무 빠르게 변하고 움직이는 티비의 내용물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힘들어진다.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재미가 없다. 너무 천천히 가야 하고 시간도 걸린다.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낯설다.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수동적인 것이 쉽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열정 없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나만의 창의성은 시도조차 못 하는 아이의 삶. 누가 봐도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영어가 모국어든 제 2외국어든 영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힘든지 모르고 하게 마련이다. 책만 읽어주면 영어에 관한 만사형통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배워가는 여정이 사랑하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힘든지 모르고 배우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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